대기업 910억 '꽁돈'...중소업체 1040억 '부담'
택배시장 지각변동 예고...대기업만 생존할 듯
신규증차 제외 업체, "폐업 vs 대기업 M&A냐"
관계자 "번호판 자금 압박에 신고포상금제까지"

택배신규 증차를 놓고 택배사와 자가용 택배기사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자가용 택배차로 추산되고 있는 1만 5000여대(2012년 4월 기준, 상위 택배 12개사 취합)중 약 7000대 차량에 대해서만 신규증차하고 나머지는 양도ㆍ양수해 영업용 택배차로 전환하는 계획을 최근 국토해양부 관계자가 밝힌 것으로, 일부 언론에 보도된데 따른 것이다.

증차는 업체별 물동량을 기준으로 차등 공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택배사들 사이에서는 대기업 챙겨주기 위한 정부의 꼼수가 아니냐며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으며, 업체끼리의 갈등 또한 심화되고 있다.

▲택배증차의 본 목적

현재 택배시장에는 중ㆍ소 업체를 사장(死藏) 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증차가 이뤄질 것이라는 여론과 함께, 증차를 명분삼아 물갈이하려는 일명 ‘가지치기’ 작업을 국토부가 주도하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업체별 물동량에 따라 공급하겠다는 것은 대기업 택배사에게 번호판을 몰아주겠다는 국토부의 확고한 의지가 담겨있는 계획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큰 줄기(대기업)만 살려 놓고 잔가지(중소업체)를 치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7000여대만 공급할 계획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 된다”며 “시장의 수요ㆍ공급을 조절해 화주와의 불공정 거래를 개선하는 한편, 업체간 저단가ㆍ출혈경쟁을 막기 위한 과제를 풀기 위한 계획 또한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신규증차를 받지 못하는 나머지 업체들은 약 1040억원의 막대한 부담을 떠안게 되기 때문에 내년에 대대적인 물갈이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택배시장 ‘부익부 빈익빈’ 불가피

자가용 택배차에 대한 신규증차 작업이 연말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점과 내년부터 화물운송사업 관련 신고포상금제가 시행되는 점을 종합해 볼 때, 조만간 택배시장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국토부의 계획대로 신규증차가 추진된다면, 증차 확률이 높은 대기업에게는 910억원(1300만원*7000대) 상당 가치의 부수입이 생기게 되며, 증차대상에서 제외된 나머지 업체들은 1040억원(1300만원*8000대)의 지출 부담을 떠안게 된다.

즉 물동량이 확보된 상위 소수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신규증차 대상에서 제외된 중ㆍ하위 업체는 도산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택배시장의 양극화 골이 깊어질 전망이다.

내년부터 신고포상금제가 시행되는 점을 감안할 때, 신규증차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업체들은 사생결단을 내야한다.

올 들어 1300만원 대까지 치솟은 영업용 번호판을 매입해 사업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문을 닫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A사 관계자는 “불경기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대당 1300만원을 주고 영업용으로 전환하라는 것은 사업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며 “910억원 상당의 번호판을 대기업에게 공짜로 밀어주고 중소업체는 값을 지불하고 매입하라는 것은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공생발전 정책을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A사 소속 자가용 배송기사 김씨는 “내 돈 내고 영업용 번호판을 사면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은 없다”며 “A사에서 번호판을 제공하지 않으면 타 업체로 이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간 잠잠했던 정부 단속이 ‘카파라치’로 탄력을 받기 때문에 무조건 노란색 번호판을 달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번호판을 제공하는 업체를 찾아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기업의 번호판 장사로 이어지나

번호판 매입과 관련 자금난이 불가피한 업체들은, 대기업 택배사에게 소속 자가용 택배차주를 빼앗기게 되며 결국 배송기사ㆍ차량(지입차주) 부족으로 폐업 또는 대기업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들에게는 승승장구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란 얘기다.

대기업에 비해 물량확보가 저조한 중ㆍ소업체가 시장에서 퇴출되면, 대기업은 약 12억 9906만 상자(2011년 기준)의 택배물량을 고스란히 손아귀에 넣게 되며, 배송기사 등 인력 부족난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또 정부로부터 약 910억원 상당의 번호판을 공짜로 받아 8년간 자행해 온 불법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엄청난 혜택을 부여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 대해 화물업계는 대기업 택배사의 배를 불리기 위한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화물업계는 그간 대기업 택배사들은 배송기사 등 택배 종사자들의 근무환경의 열악함과 이들의 영세성을 내세워 자가용 택배차 신규증차가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해온 점을 지적, 정부가 추진 중인 자가용 택배차의 신규증차는 대기업에게 지입료(관리비)를 받고 번호판 장사하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이라며 이를 무효처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8년간 지속돼온 대기업의 불법행위를 처벌하지는 못할망정, 정부가 이들의 횡포를 인정해 주는 것은 상식 이하의 결정”이라며 “신고포상금제로 인해 영업용 번호판이 많은 택배사로 자가용 택배차주들이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며, 화물시장 생리상, 당연히 관리비ㆍ보증금 명목으로 지입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결국 택배사와 지입차주의 종속관계의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되며, 노예계약으로 전락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택배차의 신규증차는 즉시 무효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